일본의 안타까운 대재앙을 바라보며 순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소설가 황석영의 북한여행기가 생각났습니다.
90년대 초 망명생활을 하던 작가가 북한을 방문했던
당시의 경험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내용이었는데요,
늑대와 쥐새끼로 각인되었던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작가는
역사, 사상, 정치제도 이전에 ‘그들도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한국엔 사방에 일본이 가득합니다.
“일본에서 논다”는 일본관광 유치광고.
자기 동네인 듯 자연스럽게 동대문을 활보하는 일본관광객들...
알바로 돈벌어서 짧게 일본유학, 여행을 갈려고 한다는 수많은 알바생들...
짧은 휴가, “일본이나 갔다 오지.” 하는 사람들...
일본에서의 한류~한류~...
일본은 이렇게 늘 우리 가까이에 있긴 했지만
그건 일본의 구경거리, 먹거리, 문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런 어떤 것이었던 듯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의 사람이 보입니다.
칼과 같은 예리함과 자로 잰 듯한 정확함으로
피도 눈물도 없을 것 만 같았던 일본 사람이 아닌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대지진, 쓰나미, 방사능 유출...
생떼같은 자식과 가족을 잃고 고개숙인 그들의 어깨를 보며
우리 한국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다름아닌 다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거대한 쓰나미 속에서 필사의 노력에도 끝내 놓쳐버린 아이의 손.
어미의 가슴에 평생 돌처럼 굳어버릴 죄책감의 무게를
눈물로 동감하는 모든 사람은 ‘조센진’도 아닌 ‘쪽발이’도 아닌
그냥 다 사람이었던 것이죠.
독도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일단체까지도 일본을 돕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의 참상에 애도와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직 단 하나의 이유, 사람이기에, 인간이기에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
역사적 감정이나 그 어떤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치와 허울에 우선하는 것은 사람 그 자체라는 것.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경제와 국익이라는 명분 속에, 감성보다는 차디찬 합리성으로 완전무장된 세상이지만
극한의 고통에 내몰린 나와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그 어떤 이유보다, 사람을 향해왔던 것이고
망각해왔던 ‘인간성 우선’이라는 진실이야말로
일본의 대재앙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모든 분들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더 이상의 큰 고통이 그 분들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작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해봅니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리플이 생각납니다.
“힘내라, 일본! 하루빨리 다시 일어나서 우리 한국이랑 당당하게 겨뤄보자고!
영원한 라이벌, 영원한 이웃! 일본 화이팅!”